주말 저녁,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찻집에 앉아서 보았다. 이면 도로로 들어가는 자동차 행렬에 공백이 생기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차선 도로를 횡단하는데, 길을 다 건너자마자 저마다 휴대 전화를 꺼내는 것이었다. 열 명 중에 일고여덟이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뚜벅뚜벅 걸으며 모니터를 내려다보고 이었다.
물론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막 영화가 끝난 극장 앞이나 지하철 승강장 같은 데서 마주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찻집에서 ‘멍하니’ 혼자 앉아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평소 낯익던 사물이나 사태가 생소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날 저녁, 나는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모니터 중독, 모니터 중독이라고 중얼거렸다.
모니터는 텔레비전에서 컴퓨터, 휴대 전화, 디지털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수시로 우리의 시각을 묶어 두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켜는 것에서 시작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끄는 것으로 끝난다. 모니터에서 모니터까지가 하루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 뉴스를 튼다. 집을 나서면서 휴대 전화를 켜고, 회사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스팸 메일을 지우고, 뉴스 사이트를 훑어보고, 기자 카페에 들어가고…. 회의가 시작되면 휴대 전화를 껐다가, 회의가 끝나면 휴대 전화를 켜고 모니터를 본다. 일과 일 사이를 맺고 끊는 것이 모니터다.
삶의 중반 이후에 텔레비전을 접한 노인들은 모니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니터 속에서 진행되는 드라마를 실제 상황으로 인식하고는 한다. 가령 며칠 전에 끝난 연속극 ‘가’에서 죽은 주인공이 ‘나’라는 드라마에서 살아 있으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텔레비전과 함께 자라난 어린이들은 다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요즘 어린이들은 부모 형제가 아니라 텔레비전을 통해 언어를 습득한다. 외부를 인지하는 채널이 가족(인간)에서 모니터로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