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숲으로, 강으로, 바다로…. 사람들은 편안한 집을 떠나서 견문을 넓히고 모험을 즐기며 휴식을 누리러 온갖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좋은 여행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즐기고 누리는 여행은 흔하나, 깊게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는 여행은 드물기 때문이다.
여행을 영어로 트래블(travel)이라고 한다. 이 말은 14세기 후반에 처음 나타났다. 당시 영국 왕족은 ‘노르망디 공’의 후예들로 본래 프랑스 땅에 영토를 둔 귀족이었으므로 상당수 영어 단어들이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 트래블도 그중 하나이다. 이 말은 고대 프랑스어 트라바일(travail)에서 왔다. 트라바일은 ‘고생하다’라는 뜻이다. 중세 유럽 땅엔 곳곳에 도적과 노예 상인이 들끓었기에 안전한 여행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이 곧 고생이라는 인식은 이로부터 나타났다.
그런데 트라바일은 ‘아무 쓸모없는 고생’만 뜻하지는 않는다. 성서에는 이 말을 신이 여자에게 내린 약속에 사용한다. 죄를 저질러서 에덴에서 쫓겨날 때 히브리의 신 야훼(여호와)는 이브(하와)에게 말한다.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 트라바일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겪는 고생, 즉 산고를 뜻한다. 그러니까 여행이란 잉태한 여자가 되는 일이다. 자기 안에 타자를 받아들여 정성스레 돌본 후, 때가 되면 자아를 찢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낳는 일이다. 과정은 참기 힘든 고생이되, 결실은 한없는 기쁨을 가져온다. 좋은 여행이란 언제나 낯선 일을 마음에 품어 기른 후 자아를 새롭게 하여 돌아오는 일이다. 트래블이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서양 문명은 한 여행자로부터 시작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이다. 지중해 동쪽 소아시아 지역 출신인 호메로스는 약 2800년 전 희랍에서 활약했던 시인이다. 그는 희랍 민족의 신화와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영웅담을 아름다운 운율에 얹어서 불후의 작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지었다. 두 작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서사시이자 유럽 최초의 문학으로, 후대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소설가 레몽 크노는 말했다. “모든 위대한 문학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다.” 불멸의 이름을 얻으려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야기이거나, 무수한 모험을 겪고 많은 경험을 쌓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