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는 침울해 있었어. 자기 영토 내 종교 분쟁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고, 오스만제국과의 전투에서도 고전하던 참이었기 때문이야. 황제는 울적한 기분을 달래고자 궁정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에게 그림을 의뢰했어. 화가는 황제의 기분 전환을 위해 과일과 채소 등 다양한 물품을 늘어놓아, 멀리서 보면 사람 형태를 띠는 독특한 작품을 그리기로 마음먹지. ‘사계’ 연작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어. 각 그림에는 계절을 상징하는 인물이 묘사돼 있는데,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찬찬히 살펴볼까?
봄 | 봄을 상징하는 인물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에 알맞게 미소짓는 젊은이로 그려졌어. 피부는 흰색과 발그레한 분홍 꽃으로 묘사되었고, 뺨은 붉은 장미로 표현됐어. 콧대는 아직 피지 않은 백합 꽃봉오리인데, 활짝 핀 백합은 인물이 쓴 모자 꼭대기에 깃털을 대신해 올라가 있어. 옷은 딸기 줄기와 민들레 잎 등 싱그러운 제철 채소와 식물로 짜였고 가슴에는 붓꽃 장식이 매달려 있어. 미술학자들에 따르면 ‘봄’에 묘사된 식물 종류는 무려 80가지에 이른다고 해!
여름 | 식물이 봄보다 더 자라난 계절인 만큼, ‘봄’의 인물보다 나이가 찬 이 청년은 다양한 열매로 묘사되었어. 볼은 분홍빛으로 물든 복숭아로 표현됐고 코는 통통하게 익은 오이, 입술은 앵두이며 치아는 재치 넘치게 강낭콩으로 구성됐네. 이 그림엔 당대 진귀했던 수입 작물도 보이는데, 귀 역할을 하는 옥수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여왔고 목을 이루는 하얀 가지는 아프리카·아라비아에서 수입한 것이야. 학자들은 타 대륙까지 세력을 떨치는 황제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수입 작물을 그려 넣었으리라 추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