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신분인 평민 대표가 베르사이유의 테니스코트에 모여 따로 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새 헌법 제정 전에는 해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사건 중 하나야. 루이 16세는 이 국민의회를 인정할 수 없었고, 이들을 탄압하기 위해 군인 2만 명을 베르사유에 동원했어. 군대가 소집되고, 민중에게 인기가 많았던 재무장관 네케르가 해임됐단 소식에 사람들은 웅성거렸어. “왕이 겉으로만 우리를 달래는 척하면서 속으론 뒤통수치려는 거 아냐?”
분위기가 흉흉해졌어. 게다가 계속된 흉년으로 주식인 빵값이 상승해 최고치를 찍자, 사람들은 왕과 귀족들이 자신들을 굶겨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어. 마침내 파리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어. 파리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국민의회를 보호하고자 무기를 탈취,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바스티유 감옥은 왕이 정치범을 가두어두었던 곳으로, 전제정치의 상징과 같은 곳이야. “바스티유를 함락시키고 왕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풀어주면 우리 편을 얻을 수 있다! 바스티유에 있는 무기도 확보하자!”
불타오르는 감옥을 보며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어. 바스티유 감옥은 함락됐어. 지방 도시와 농촌 사람들도 파리 시민들의 승리에 고무돼 곳곳에서 폭동을 일으켰어. 농촌에서의 시위는 한층 과격했어. 귀족이나 영주의 저택에 불을 지르고 봉건제의 문서들을 모두 불태웠어. 이를 방해하는 자들은 전부 처단했지. 결국 루이 16세는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약속하고, 해임했던 네케르를 다시 불러들였어. 왕이 굴복하는 걸 보고 귀족들은 재산을 챙겨 네덜란드·스위스 등으로 꽁지 빠지게 도망가기 시작했지.
그런데 이 귀족들이 외국인 군대와 부랑자를 동원해 농민들을 습격할 거란 풍문이 또다시 급속도로 퍼졌어. 괴담은 순식간에 배고픈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었어. 신분제와 각종 부당함에 짓눌린 비참한 삶, 굶주림, 거기다 습격에 대한 공포까지…. 훗날 역사가들은, 이 공포에 겹친 공포를 ‘대공포’라고 이름 붙였어. 사람들은 너도나도 무기를 들었어. 프랑스 혁명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