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절대권력을 손에 거머쥔 루이 14세에 대해 알아보았어.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귀족과 교회의 힘이 약화되고, 국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게 된 과정을 설명했어. 하지만 점차 유럽사회는 절대왕정, 절대주의를 독재라고 여기게 됐고,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개혁,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고 했었지.
이 무렵, 프랑스 민중들이 테니스코트에서 모여 회의를 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1789년 6월 20일, 프랑스 민중 대표들이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회의를 연 이유는 뭘까? 이 회의는 5월 5일부터 멀쩡히 잘 열리고 있었는데 당시 왕이었던 루이 16세가 갑자기 수리를 해야 한다며 본래 회의장을 폐쇄해버렸기 때문이야. 이는 민중이 주도한 회의를 방해하려던 루이 16세의 ‘꼼수’였어.
18세기 중엽 프랑스는 세 개의 신분으로 이루어진 신분제 사회였어. 인구 약 2,500만 명 중 10만 명 정도가 성직자(제1신분), 40만 명 정도가 귀족(제2신분),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제3신분인 평민이었지. 비율로 보면 제1·2신분을 합쳐도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나머지 98%인 제3신분에는 시민, 농민, 노동자들이 포함되었지. 국왕은 이 1·2·3신분 위에 초월적으로 군림했어.
지배 계층인 제1·2신분과 피지배 계층인 제3신분 사이에 얼마나격차가 컸는지는 따로 말 안 해도 알지?
지배 계층은 세금을 감면받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어. 반면 전체 세금의 80%를 부담하던 평민은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녔고 빵밖엔 먹을 게 없었어. 흉작과 기근이 반복되면서 빵을 먹기도 힘들어지자 식민지였던 아메리카에서 감자를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감자 안에 독 성분이 들었다고 의심하는 바람에 보급이 잘 안 됐어. 그래서 기근이 더욱 심각해졌고.
그런 와중에 영주의 물레방아를 사용했으니 세금을 내라(밀을 가루로 빻으려면 물레방아가 꼭 필요했지), 소득의 10분의 1을 교회에 바쳐라, 심지어 7세 이상이면 소금을 살 때도 세금을 내라 등 온갖 이유로 세금을 떼어갔으니 서민들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