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회가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이라는 세계사적인 업적을 이루며 개혁의 날을 세웠지만, 루이 16세는 이를 재가(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하지 않고, 군대를 베르사이유로 이동시켜 버렸어. 봉건제가 폐지되고 성난 민중이 베르사이유를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많은 귀족이 망명길에 올랐어. 그러자 귀족들에 기대 돈을 벌던 일자리 다수가 사라져 실업자가 급증했어. 여기다 기상 이변으로 흉작이 겹쳐 파리의 빵값이 치솟았지. 서민들의 생활은 형편없이 곤두박질치면서 원망이 폭발 일보 직전이었어.
그런 와중에 10월 1일 베르사이유에서 플랑드르 군대를 위한 호화로운 연회가 열렸어. 이들이 혁명의 상징인 삼색기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파리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어. 마침내 굶주린 아이들을 보다 못한 파리 여인들이 전면에 나섰어. 1789년 10월 5일, 치마 입은 여인들은 파리 시정에 모여 “우리에게 빵을 달라!”고 외치며 베르사이유 궁전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어. 시위는 점점 과격해졌어. 왕의 근위병 몇 명을 죽이고 베르사이유 왕궁 정원에 들이닥친 시위대는 왕을 향해 ‘파리로 돌아가라’고 외쳤어. 시위대 규모에 놀란 루이 16세는 왕비와 왕자를 데리고 파리 튀일리 궁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지. 왕의 거취까지도 바꿀 만큼 시민들의 힘이 세진 거야!
국왕 일가는 파리로 이동했고, 국민의회 역시 파리로 이동한 다음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됐어.
이듬해 1790년 시위가 주춤해지면서 다양한 개혁이 진행됐어. 왕 말고도 구시대의 권력을 대표한 세력이 교회인데, 시민들로 이루어진 국민의회의 칼끝이 이번엔 교회를 향했어. 프랑스의 심각한 재정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가 가진 땅과 재산을 몰수, 국유화한 후 그걸 팔아서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 프랑스 전체 국토의 약 10%가 교회의 소유였거든. ‘성직자 민사 기본법’이란 것도 만들었어. 시민들이 선거로 성직자를 임명하도록 하고, 교회조직도 행정구역에 따르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어. 성직자의 임금도 국가에서 주도록 했어. 이를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했지. 자, 교황을 비롯해 성직자들이 가만히 있었겠어? “아니, 하느님의 뜻을 대표하는 우리들을 시민이 임명한다고? 괘씸한!”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혁명 세력이 약해질 틈을 노리던 이들은 나중에 혁명 반대 세력이 돼.
이밖에도 국민의회는 부지런히 움직여 구시대적인 행정을 개혁해나갔어. 프랑스 지방 행정의 기본이었던 주 제도를 폐지하고, 83개 도로 개편했지. 법관도 선거로 선출하도록 했고, 관직은 시민에게 개방했어. 특별한 신분만 관직을 독점하지 않도록 한 거지. 또 중세부터 내려오던 길드(상인들의 조합. 특정 지역의 상권을 독점했다)를 폐지하고, 지역마다 내야했던 관세와 통행세도 금지했어. 이로써 상공업자들의 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