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들여다봤던 군산 바로 아래로 내려오면 김제라는 도시가 있어. 김제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니? 황금빛 벼가 넘실대는 드넓은 평야가 떠오른다면, 바로 맞혔어.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김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거든. 바다에서 끝없이 펼쳐져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만 보이듯,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자리한 광활한 김제만경평야에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아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어.
이 넓은 평야는 벼농사를 짓기에 알맞지. 그래서 김제는 예부터 한반도에서 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고장이기도 해. 김제의 쌀과 보리 생산량은 지금도 우리나라 1위인데, 이 명성은 무려 삼국시대기원전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의 주인공이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건 다들 알지? 김제 지역이 바로 백제의 땅이었기에, 백제는 삼국 중에서 농업이 가장 잘 되는 나라였지. 벼농사를 중심으로 농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보’나 ‘제언’(둘 다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해 냇물이나 강, 바다 등을 막아 쌓은 둑을 말해) 같은 관개 시설이 발달했어.
그중 ‘동방의 거대한 호수’ ‘나라의 큰 호수’ 등으로까지 불린 엄청나게 큰 저수지가 있었어. 바로 벽골제(碧骨堤)야.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이 거대한 저수지는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쌓은 거야. 국가 사적 111호지. 제방의 길이는 약 3.3㎞에 달하고, 높이는 5.6m나 되었다고 하네. 흙으로 이렇게나 큰 벽을 쌓아 물을 가둘 수 있었다니, 정말 우리 조상들의 능력이 대단하지 않니? 벽골제는 약 1만㏊(약 3,000평) 정도의 농지에 물을 공급해줄 수 있었다고 해.
벽골제의 위상은 지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호남선, 호남지역처럼 ‘호남’이란 말 많이 쓰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아울러 호남이라고 하는데, 이때 호가 ‘호수(湖)’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전라도는 호수의 남쪽이라는 건데, 이 호수가 바로 김제의 벽골제를 칭하는 것이라고들 해.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이 남긴 야사집 《연려실기술》 《정조실록》 등에 그 기록이 남아 있지. 호남은 예로부터 기름진 곡창지대의 상징이었어. “조선팔도가 흉년이라도 호남이 풍년이면 살 수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 광활한 평야에 무려 1600년 간 생명 같은 물을 대주던 저수지가 벽골제란 말이지. 자, 이제 벽골제의 위상이 조금이나마 짐작이 되니? 오늘날 김제 지역 축제인 ‘김제지평선축제’가 바로 이 벽골제를 중심으로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