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을 예견하는 재난영화들은 꽤 극적이다. 지구 전체가 꽁꽁 얼어붙거나, 병충해로 식량을 전부 잃게 되거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거나, 거대 곤충이 위협적으로 떼 지어 다닌다. 대중문화가 내놓는 이 가상의 이야기를 소비하면서 우리는 인류가 이 재난들을 극복해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곤 한다. 멀지 않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폭염, 가뭄, 산불 등의 은밀하고 지속적인 재앙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는 걸 각성하지 못한 채.
미국의 가뭄 현황을 보여주는 아래 사진을 보자.
미국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가뭄 상태다. 특히 남서부 지역은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의 대가뭄은 2000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간 미국 서부 지역은, 기후변화의 측정이 가능한 시기 중 가장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러한 가뭄의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