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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

대형견 입마개 논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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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천둥이에게 하네스를 입히고 골목으로 나섰다. 엊저녁 일찍 마지막 배변을 해서 아침에 변이 많이 마려울 터였다. 즐거운 발걸음으로, 그러나 모종의 책임감을 갖고 좁다란 골목을 따라 큰길로 나서려고 하는 순간, 골목 어귀에서 웬 아저씨가 천둥일 보고 한마디 했다.
“거 입마개 채워야죠.”
저 요구엔 여러 버전이 있다. “채워야 하지 않아요?” “안 채워도 돼요?” 등 의문형도 있고(정말 몰라서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이미 바탕에 깔려 있다), “입마개 하세요.” 등 명령형도 있다. 반말로도 하고, 심하면 육두문자까지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견주가 여성일 때 이런 일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건 견주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인은 견종에서 찾을 게 아니다

대형견 입마개 논란을 지켜보며 마음이 정말 복잡하다. 일단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대형견 입마개 관련해선 잘못된 ‘카더라’ 정보가 하도 많아서…. 얼마 전에 이웃이 ‘모든 대형견이 입마개 해야 하는 걸로 작년에 법이 바뀌었다’고 말해 깜짝 놀라 서울시에 전화까지 해봤다. 잘못된 정보였다. 현행법상 입마개 착용 의무는 맹견에 해당하는 5개 견종(도사견·아메리칸 핏불테리어·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스태퍼드셔 불테리어·로트와일러)과 그 잡종견에 한정한다. 한때 여기에 ‘사람을 공격해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큰 개’까지 포함된 적이 있었다. 꼭 맹견만 개물림 사고를 일으키란 법은 없기 때문에(최근의 개물림 사고를 일으킨 건 보더콜리·리트리버·진도믹스 등이다) 이런 문구를 생각해냈겠지만 입마개 시비를 부추길 뿐이었던 이 모호한 문구는(‘가능성’이라니!) 2018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면서 없어졌다. 정리하자면, 지금은 맹견이 아닌 대형견에게 입마개를 하라고 할 근거가 없다. 

지금 법이 저렇게 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법적으로 입마개 해야 하는 종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게 된다. 그런데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하다. 사실 입마개 착용 의무는 견종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당신에게 한국인은 이러니 너도 당연히 그렇겠구나, 하는 식으로 말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나. 내가 속한 ‘종’에 나를 가두려는 은근한 시도는 나라는 독립적인 개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민감하게 감지하고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맹견은 당연히 공격성이 높을 테니 입마개를 해야 하고, 진도믹스는 입마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는 이상하다. 입마개 착용 의무를 판단할 때 진정으로 참고해야 하는 정보는 견종이 아닌(맹견에 속하는 종의 가능성이 더 높을 수는 있지만) 그 개의 성격, 그리고 자라온 환경이다. 기질적으로 공격성이 있는 개인지, 그리고 주인이 그 개를 어떻게 기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개를 키우며 나는 매일 느낀다. 이 아이도 한 생명으로서 당연히 욕구(먹고, 자고, 싸고, 여기에 더해 뛰고 싶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마지막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개들이 얼마나 많던가)가 있다는 걸. 본래 참을성이 강하고 공격적이지 않더라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개도 떼를 쓰고 신경질을 낼 수 있다. 욕구 불만 상태는 어떤 공격성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