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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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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까면서

노동시간과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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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장바구니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트 가면 바구니에 물건을 몇 개만 담아도 손으로 들기 늘 묵직하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 카트를 살까, 망설이다 말았다. 모든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장바구니 카트는 이제 필요없어졌다. 마트에서 배달 주문을 하거나 급할 때는 새벽배송을 이용한다. 택배노동과 새벽배송에 대해 희미한 미안함이 쌀뜨물처럼 가라앉아 있는데, 늘상 그렇듯 편의성이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걸 앞서버린다. 

몇 주째 장을 못 봤더니 기본 야채마저 동이 났다. 감자, 양파, 호박 같은 것들이. 장보러 나서기엔 컨디션이 신통치 않아 〇〇〇앱을 열어 장을 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주문한 물품이 종이박스에 가지런히 담겨왔다. 양파 한 자루를 꺼내 들다가 “어이쿠, 작은 망이 아니고 큰 망이네” 혼잣말을 했다. 두 식구 살림에는 작은 망의 양파도 종종 썩고 싹이 나기 일쑤인데…. 어쨌든 양파 자루를 야채 보관하는 데 얌전히 놓아두었다.      

또 한두 주가 지났다. ‘아, 양파…. 썩기 전에 껍질 벗겨서 김치냉장고에 넣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주말과 휴일마다 일이 많아 양파 다듬을 짬을 못 냈다. 월요일 아침, 야채볶음을 하려고 양파를 꺼내려다 안 되겠다 싶어 자루째 개수대로 옮겼다. 그냥 뒀다간 모조리 썩어 무를 판이다. 큰 망이라고 해봤자 열두어 개 남짓의 양파를 다듬기 시작한다. 껍질을 벗기고, 무르기 시작한 부분은 도려낸다. 눈은 맵고 개수대에 잔해가 가득이다. 껍질은 일반 쓰레기로 따로 모아 버리고, 도려낸 것들은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해야 한다. 아침 출근 전이고, 다른 야채들도 씻고 볶아야 하고, 도시락도 싸야 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해치워버리자.’ 

서두르려다 그 마음에 제동을 건다. ‘해치워버려야 할’ 일인가. 이 일의 가치는 다른 것에 비해 덜한가. 하루의 일상 중에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이 있을까. 누군가 농사지은 양파를 함부로 버리지 않게 단도리 하고, 그걸로 내 몸을 위해 소박한 반찬을 만드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