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의 말이다. 인류가 원래부터 탁월하게 읽는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기에 독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뇌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재편성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거쳐 만들어진 기적적인 발명과 같다.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24시간으로 비유하자면, 독서가 대중화된 시점은 밤 11시 53분경이다. 그야말로 최근의 기적인 셈이다.
독서가 인간의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형성된 고차원적 능력인 만큼 갈고 닦아야 마땅하겠지만, 알다시피 요즘엔 모두가 독서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 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이 10명 중 5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통계는 종이책만을 대상으로 했고, 전자책 독서는 포함하지 않았다. 독서는 꼭 종이책으로 해야 할까?
물론 종이책만이 주는 특별함은 있다. 종이에서 느껴지는 질감, 고유의 책 냄새, 편집 형태와 표지에서 비롯되는 시각적 체험은 전자책이 주지 못하는 고유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전자책이 대신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손맛이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아직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라는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논란은 역사적으로 자주 반복됐다. 생각해보자. 지금의 종이책이 옛날에도 자연스러운 독서 경험을 제공해 주었을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종이책이 처음 등장한 때는 16세기다. 당시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이 일어났고,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인쇄술은 위대한 문명의 이기(利器)[1]였다. 덕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책이 보편화됐고, 이는 인류의 지성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동했다. 바야흐로 ‘독서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