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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단지’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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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골목은 사방으로 잇닿아 있었고 아이들은 이 동네 저 동네 몰려다니며 놀았다. 사람들은 골목과 거리를 중심으로 막힘없이 자유롭게 흘러다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동선을 보자. 단지를 에워싼 울타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지역을 갈 일이 있을 때도 다른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느니 길을 빙 돌아간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내걸려 있어 내가 살지 않는 단지를 지나는 게 영 편치 않다. 
우리는 편리한 아파트 단지를 얻는 대신 마을공동체를 잃었다. 한국 아파트의 문제는 아파트 자체가 아니라 단지가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의 경우 전체 주거 지역 가운데 공동주택 단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전체의 약 21%를 차지한다. 
이렇게 단지가 많아진 이유가 뭘까? 

국가가 할 일을 입주민이 부담하다

아파트를 단지화하면 생활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놀이시설, 경로시설, 상가, 병원 등)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지 안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마련돼 있다. 마트와 병원, 녹지, 도서관, 주차시설이 완벽하다.
신축 아파트 단지는 나날이 진화 중이다. 커뮤니티 센터라고 하여 도서관, 독서실, 사우나, 운동센터 등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게 편한 것은 당연하다.
단지가 이렇게 살기 좋은 이유는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돈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단지로 들어오는 도로와 단지 내부를 잇는 도로, 주차장, 관리사무소, 조경시설, 수해방지시설, 안내표지판과 보안등, 통신시설과 가스공급시설 뿐만 아니라 비상급수시설과 난방설비, 전기설비와 소방설비, 공동수신설비, 급배수설비 등(이상 부대시설)과 어린이놀이터, 근린생활시설, 유치원, 주민운동시설, 경로당, 주민공동시설, 보육시설과 문고 등(이상 복리시설)에 대한 설치기준이 법률로 정해져 있고, 모두 입주자 부담이다. 법률이라는 절대적 공권력은 입주자의 부담으로 기반시설을 확보할 것을 강제한다. _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가로등, 놀이터, 유치원, 경로당…, 이런 시설들은 공공시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단지 안에 이와 같은 기반 시설을 둘 때는 입주자가 부담한다. 이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단지 이외 지역에 경로당을 짓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동네에 경로당이 필요하다면 그 경로당은 해당 지자체의 예산으로 만들고 관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