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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러시아공사관

정동 언덕에 전망 탑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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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에는 늘 사람이 북적인다. 날 좋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그 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근대의 정취가 느껴져서일 테다. 하지만 의외로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던, 야트막한 언덕길을 일부러 찾아 올라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언덕배기라는 걸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사실 이곳은 도성 사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를 갖춘 숨은 언덕길이다. 1890년, 이곳에 우리나라 첫 서양식 외국공관인 러시아공사관이 건축됐다. 현재 조성된 정동공원은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던 자리다.  

옛 러시아공사관은 우크라이나 출신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A. I. Seredin-Sabatin)이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본관은 파사드(Facade, 건물 정면의 외벽 부분 3면)을 아치로 장식했고 창문을 그 안에 들였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공관은 본관 외에도 서기관 관사와 여러 주거공간 및 주방동, 세탁과 경비동을 비롯해 마구간까지 갖춘, 제법 규모 있는 건물이었다. 정문에는 러시아 게이트, 혹은 아문(俄門)이라 부르는 붉은 벽돌로 만든 문이 있었다.

1895년 말 조선 남쪽을 돌아본 러시아 참모본부 카르네프 대령과 그의 보좌관 일행은 당시 러시아공사관에 대한 묘사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가 머물기로 한 유럽식 주택구역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 눈앞에 미국, 영국,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는데, 그 중 러시아국기가 가장 높이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붉은 돌로 된 문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러시아를 상징하는 쌍독수리가 그려져 있고, 담 안으로 러시아제국의 웅장한 공사관 건물이 보였다. (중략) 
러시아공사관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터가 매우 넓었고 도읍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큰 건물 이외에도 작은 건물이 네 채 있었다. K. I. 베베르는 주변의 울타리 건설과 부지 구입까지 포함해서 3만 3000루블을 들였다고 한다. 이 건물 뒤에는 헛간이 달린 작은 곁채와 정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토종 비둘기들을 많이 기르고 있었다. 울타리 왼편에는 독서실과 당구장이 있는 외교관 클럽이 정면에 있었다.” <내가 본 조선, 조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