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1920년대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무렵이야. 전쟁의 여파를 수습하며 유럽 각국에는 엘리베이터를 갖춘 고층 빌딩과 기계화된 공장, 거대한 백화점이 들어섰어. 경제 성장 또한 가팔랐지. 사람들은 기계문명이 자리 잡은 새로운 도시 생활의 매력에 흠뻑 젖었어. 제1차 세계대전 후 풍요로웠던 이때를 두고 유럽에서는 ‘황금의 1920년대’라고 해.
이 시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상승했어. 20세기 이전만 해도 여성의 생활 반경은 집 안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남성들이 참전하면서 인력이 줄어들자 여성들이 빈자리를 채우며 직업을 갖게 됐거든. 직업을 가지니 돈도 벌게 됐고, 경제적으로 독립성을 지니게 되었어. 당연히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도 커졌지. 그래서 당시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어.
그러다 보니 여성들의 모습도 달라졌어. 전쟁 이전 여성들은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허리와 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옷차림새로 사뿐사뿐 나다녔어. 그러나 1920년대에는 전혀 반대 모습이 유행했어. 짧은 단발에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당당하게 거니는 여성이야말로 멋스럽다고 여겨졌거든. 이들을 신(新)여성이라고 불렀어. 화가 렘피카가 바로 신여성으로, 프랑스·미국·멕시코 등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로 유명해졌지. 렘피카의 자유로움과 당당함은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에서 극대화되었는데, 작품을 자세히 살펴볼까?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1898~1980)
어린 시절 이름은 ‘타마라 마리아 고르스카’로 폴란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1년 스위스 로잔의 기숙학교를 다녔으나 적응하지 못했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미술에 관심 갖게 되었다. 1916년 타데우즈 렘피키라는 변호사와 결혼한 다음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 이 시기 남편의 성 ‘렘피키’를 변형해 ‘렘피카’라고 자신의 성을 고친다. 파리에서 미술가로 데뷔한 타마라는 아르 데코의 선봉장으로서 단번에 스타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남편과 이혼하고 미국으로 떠나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예술가가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아르 데코 양식에서 벗어나 추상 표현주의 작품을 내놨으나 비평가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고, 1966년 프랑스 파리 예술장식 박물관에서 렘피카의 회고전이 열린 뒤에야 다시 주목받았다. 1978년 멕시코 쿠에르나바카로 이주한 다음 1980년 사망했다. 렘피카의 유언에 따라 화장된 재는 포포카테페틀 화산에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