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에 꼭 필요한 세금. 거두기도 쉽지 않지만 곳곳에서 새는 세금 누수를 막기도 쉽지 않다. 세금 누수의 이유는 많지만 예산 집행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생기는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사용 내역을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예산 항목이 있다. 국민에게 사용 내역을 증빙할 필요 없이, 국가 기관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예산, 바로 ‘특수활동비(특활비)’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드는 경비’이다. 원칙적으로는 특활비를 사용할 경우에도 영수증을 첨부하는 등 증빙을 해야 한다. 다만 특활비 사용 내역이 밝혀질 때 보안상 문제가 생긴다고 판단되면 증빙을 생략할 수 있다. 즉 첩보 활동처럼 비밀 업무에 사용한 돈은 증빙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근거로 삼아 특활비를 사용하는 국가기관 20여 곳이 보안이 필요한 사업에 썼다며 수십 년간 특활비 집행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처럼 특활비는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여 ‘검은 예산’으로 불린다.
특활비 부정 사용 문제가 크게 터진 건 2016년 국정농단 사태[1] 당시였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지키는 업무 특성상 기관에 배정되는 예산 약 5000억 원 전부를 특활비로 받아왔다. 이 막대한 금액의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악용, 박근혜 정부 시절 재직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국정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예산 중 35억 원을 상납했다. 국가 활동에 쓰여야 할 혈세가 대통령의 개인 자산으로 전용된 것이다.
한편 2015년,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깜깜이로 집행되는 특활비의 실체를 국민이 알아야 한다며 국회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2]를 했다. 국회는 “사용 내역을 공개하면 국익을 해치고 행정부 감시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며 맞섰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는데, 2018년 대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선고를 내렸다. 특활비 운용에 대한 국민의 감시권이 법적으로 공인된 순간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11~2013년 특활비로 사용했던 239억 원의 지출내역서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