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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강박증’에 짓눌린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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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수준은 꽤 높은 편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영어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대학에서도 영어로 수업하고, 취업 시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스펙을 필요로 하니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영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상당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린 꼬마부터 중장년까지, 영어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잘 못 한다는 ‘결핍감’이 만든 강박이다. 

대학에서 영어 수업을 하면 대부분 앞자리에는 유학파, 외고 출신 학생들이 앉아 원어민 교수와 웃고 떠들며 대화한다. 일반고 학생들은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들으려 노력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농담에 따라 웃지만,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럽다. 우리말도 아닌 지구 반대편의 다른 나라 언어를 모르는 게, 왜 이렇게 민망할 일일까? 만약 베트남어 수업, 산스크리트어 수업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부끄러움의 속내에는 누군가 ‘더 나은 언어’를 사용할 줄 알고,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언어를 못 한다는 자책이 있다. 영어 능력이 거의 ‘필수’임에도 응당 갖춰야 할 교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대단한 영어도, 늘 세계 최고의 지위에 있었던 건 아니다.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노르만족에 정복당했던 영국에서, 프랑스어는 법률이나 정치에 쓰이는 권력의 언어, 라틴어는 신성한 종교를 표현하는 상류층의 언어였고, 영어는 평민과 하층민의 언어였다.

영어를 사용하는 농부들은 작은 방 하나가 있는 진흙과 잔가지로 만들어진 오두막집에서 살았던 반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주인들은 돌로 지은 높은 성에서 살았다. (…) 영어 사용자들은 우리가 지금도 고대영어로는 ox(황소), 현재는 좀 더 흔하게 cow(소)라고 부르는 살아 있는 가축을 돌보았다. 반면 프랑스어 사용자들은 프랑스어로 beef(소고기)라고 부르는 식탁에 올라온 조리된 고기를 먹었다. (…) 영국인들은 노동을 했고, 프랑스인들은 잔치를 벌이며 즐겼다._《영어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