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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인권,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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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세계 안에서 그 나라가 가진 힘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힘은 제국주의 시대에 강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재 영어가 국제 공용어처럼 쓰이는 배경에는 현대에 오면서 패권 국가로 성장한 미국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 결과 어떤 언어는 지배하고 어떤 언어는 지배를 당한다. 한글은 지배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 시절, 일본은 우리 말을 빼앗고 일본어를 국어로 삼게 교육시켰다.

'지배하는 언어, 지배당하는 언어'라는 이 관계는 한 국가 안에서도 작동한다. 같은 나라 사람이면 모두 같은 말을 쓸 텐데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같은 나라라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잘 몰라서 하는 착각이며 오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 국가 안에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많다. 스위스는 26개의 칸톤(주)이 모인 연방 공화국으로 4개의 공용어(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슈만어)를 사용한다. 인도는 공용어가 15개나 되고,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은 한 국가 안에서 4~5개 언어가 통용된다. 

모어[1]’가 그대로 ‘국어’이고, 국어는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는 확고한 환상이, 모어가 국어가 아닌 사람들, 혹은 국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들이 많이 있는 현실을 잊게 한다. _《언어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출생과 함께 하나의 언어만 익히면 된다. 또한 집에서 쓰는 말을 학교에서도 쓰고 행정이나 법률 분야 같은 공적 영역에서도 쓴다. 언어 다양성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하나의 국가에서 여러 언어를 쓰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 결과 언어에 대한 관용이, 언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턱없이 낮고, 자기 중심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외동포 2세, 3세들이 한국어를 쓰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 동시에 한국에 이주해서 살아가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경우에도 두드러지게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미권과 유럽권의 백인들이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이주민들에 대해서는 한국어를 모르고 우리 문화를 익히지 않았다고 혹독하게 차별한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말을 써라' 라는 말조차 평등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아시아의 가난한 국가 출신 이주민들에게는 한국어를 잘 못한다며 '한국에 왔으면 한국 말을' 써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국가의 백인 이주민들에게는 차마 이 말을 입밖에 꺼내놓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