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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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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

깨진 접시로 조명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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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계획은 사람 눈을 막고, 감각을 닫아버린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 인생을 즐기기 위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디자인은 실생활에 필요한 기능만을 유념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20세기의 ‘꼰대적 관점’에 딴지를 거는 말이다. 바로 이 말 때문에 우리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를 아직 놓아줄 수 없다. 그의 말은 복잡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급급해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환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디자인

그가 디자인한 조명 ‘포르카 미세리아’는 부서진 식기 조각들과 나이프·포크와 같은 도구들이 얼마나 멋진 조명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접시들이 허공에서 폭발하는 듯한 모양의 샹들리에 조명이라… 누가 장난친 것 같지만, 그 누가 장난으로라도 이런 조명을 만들 생각을 할 수나 있을까. 대충 훑어보면 이 조명은 아무 조각들이나 이어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깨진 접시 파편들에 가늘고 긴 막대를 붙여서 매우 정성스럽게 형태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정교하게 만든 결과물이 엄청난 시각적 에너지를 발산하며 의미론적 가치를 한껏 폭발시키고 있다.

잉고 마우러가 이 조명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 순식간에 평정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그런 엉성한 주장은 이러한 디자인 앞에서는 갈 길을 잃고 만다. 디자인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디자이너가 정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을 보는 사람이 정한다. 이 조명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디자인인지 예술품인지 세세하게 따지는 행위는 전혀 중요치 않다. 뭐가 되었던 이 희한한 물체가 주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면 그만이다. 오히려 순수한 조각품이 아닌 조명이 큰 감동과 유희를 준다는 사실만으로 더 뛰어난 예술처럼 와닿는 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