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 건강가정기본법에 적혀 있는 가족의 정의입니다. 이런 정의로 세상을 보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마음이 맞아 동거하는 친구, 배우자의 사별 이후 황혼기를 같이 보내기로 결정한 남녀, 위탁가정, 동성커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 등, 모두 가족이 아닌 걸까요? 가족을 규정하는 틀이 ‘혼인과 혈연’에 갇힌 탓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의료·주거·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지 못해 마치 없는 존재처럼 밀려나 있습니다.
2005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더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할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을 재정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 법에서 규정한 가족의 정의가 “전형적 형태 외의 가족을 ‘건강하지 않은 가정’으로 보고, 법률상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가족·가정 형태에 대한 차별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국회에서는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하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습니다. 해당 법은 성인의 동거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법으로, 여기서 ‘생활동반자’란 혼인이나 혈연관계에 있지 않지만,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기로 한 이들을 의미합니다. 이때 생활동반자 관계는 성적 정체성·성별·성관계 여부 등을 묻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혼인제도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는 법적으로 여러 의무가 많기에 이혼 절차가 까다롭지만 생활동반자는 아주 간단한 절차만으로 헤어질 수 있습니다.
동거 관계는 아직 법적으로 ‘가족’의 틀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동거인들은 여러 불편을 겪어야 합니다. 현행법상 1인 가구로 분류돼 임대주택 신청이나 전세 자금 대출이 어렵습니다. 또한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둘이 같이 산다는 걸 증명해야 할 때는 동거생활을 보여줘야 하는 등 사생활 침해를 겪을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등의 공공보험도 각자 따로 가입해야 하고, 연말정산 때에도 배우자 소득공제를 받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은행·우체국·관공서·학교 등 각종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가족 증빙’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인·혈연 중심으로만 가족을 결정하기 때문에 가족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마다 개별법이 요구하는 여러 증빙자료를 따로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에 맞춰 증빙자료를 낸다고 해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