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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아큐는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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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없는 존재, 서발턴의 이야기 

서발턴(Subaltern)은 어떤 국가나 사회의 중심 구조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 개인이나 집단을 말한다. 이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이다. 서발턴에는 노동자, 농민 등 정치·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단은 물론이고 여성, 장애인, 소수 민족, 소수 인종, 성소수자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사회 하층부나 주변부로 밀려나 있기에 자기 목소리를 공적으로 발화하거나 전달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목소리 없는 존재로 노예처럼 살아가는 서발턴이 어떻게 자기 처지를 각성하고 이해하며, 지배 담론이나 식민의 언어에서 벗어나 반항과 투쟁의 언어를 획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너무나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억압적 조직문화에 시달리고, 대중문화와 대량광고의 폭격을 받으면서 자기 언어를 상실한 채 하위주체로, 피식민인으로서, 서발턴으로 살아가는 까닭이다.  

《아큐정전》에서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은 신해혁명(1911년) 전후 웨이좡이라는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아큐라는 한 농민의 일대기를 통해서 서발턴의 각성 문제를 다룬다. 성도, 이름도 없는 최하층 존재인 그는 몸 추스를 집도, 부쳐 먹을 밭뙈기도, 마음 기댈 가족도 없는 무력하고 불쌍한 처지이다. 아큐의 큐Q는 변발한 중국인 머리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뜻하는 기호다. 더는 잃을 게 없는 밑바닥 인생인데도, 아큐는 죽을 때까지 한마디도 올바로 말하지 못한다. 언어 자체가 억압된 것이다.

마을 불량배들이 아큐를 때리면서 “이건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놀려대자, 아큐는 고통을 모면하려고 “나는 버러지야― 이래도 안 놔줄 거야?”라고 인정해 버린다. 이처럼 아큐는 강자 앞에선 더없이 비굴하다. 아울러 그는 정신승리를 즐긴다. 불량배들한테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온 아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