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2022년 12월 2일, 서울행정법원이 내놓은 한 판결문의 첫 문장이다. 한자어가 많아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앞 문장과 달리 뒤 문장은 누가 봐도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쉬운 말이 함께 쓰인 판결문이 등장한 이유는 이 소송의 원고, 즉 소송을 제기한 사람의 요청이 있어서다. 중증 청각장애인인 원고는 강동구청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일자리사업 면접 과정에서 차별을 겪었다며 강동구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는 법원의 판결과 판결 사유를 자신이 직접 알고 싶다며 재판부에 쉬운 판결문을 써 달라고 요구했고, 재판부는 ‘당연한 권리’라며 이를 받아들였다.
해당 판결문을 찬찬히 뜯어보면 최대한 쉽게 쓰고자 한 재판부의 노력이 엿보인다. 4쪽가량을 할애해 풀어 쓴 판결 사유엔 어려운 법률 용어를 되도록 배제했고, <사진 1>을 넣어 원고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림과 같은 상황이 원고가 겪은 상황이라면, 평등원칙에 위배돼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각장애인인 원고와 다른 지원자들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며 원고의 상황은 “발 받침대의 높이가 모두 같지만 세 사람 모두 경기를 관람하는 데에는 장애가 없는 높이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즉, 중증 청각장애인인 원고가 면접에서 조금 더 불리한 것은 맞으나, 차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