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눈이 멀고, 오로지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는 이 단순한 가상 상황을 던져놓은 다음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갑자기 한 사내가 눈이 멀고, 전염병처럼 사내와 접촉한 모든 사람의 눈이 멀게 된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눈이 멀게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사회와 조직, 시스템이 하나둘 붕괴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더불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존엄하다고 자부해온 인간의 도덕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우리의 그 존엄성이 얼마나 허술한 바탕 위에 세워져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언제 책장을 넘겼는지 모를 정도로 독자들이 작가의 이야기 전개를 숨 가쁘게 따라가게 만드는, 재밌는 소설이다. 그 때문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에피소드의 강렬함 속에 담긴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생각들을 영상에 담기에는 버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단순화로 인해 주제가 시시해지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