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날 오후, 명동이 한산하다. 사람들로 늘 북적이던 길은 텅 비어 휑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기자, 견디지 못한 상인들이 철시해버린 탓이다.
본래 명동은 한양 11방(조선 시대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명례방으로, 비가 오면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흙이 질어 ‘진고개’라 불렸던 분지형 공간이다. 이곳 동쪽에는 높다란 언덕이 있다. 종이 있던 고개라 해서 ‘종현(鍾峴)’이라 불렀다. 정유재란 때 이 언덕(당시 북고개, 북달재라고도 불렀다)에 진을 친 명나라 장수가 남대문에서 가져온 종을 세워 놓은 데에서 유래한다. 이곳 언덕에 1898년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가톨릭 성당이 세워진다. 처음엔 종현성당이라 부르던 ‘명동성당’이다.
명례방은 가톨릭과 연관이 매우 깊다. 조선 최초 세례자 이승훈이 여기서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자생적 신앙공동체(교회)인 명례방 공동체가 만들어진 무대이기도 하다. 또한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 김범우가 살던 곳이며, 기해박해[1]를 전후해서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비밀 선교활동을 펼쳤고, 한국인 최초 로마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가톨릭 교회는 성당을 세울 때 가급적 주변에 순교성지나 선교지가 있는 등 가톨릭과 인연이 깊은 장소를 선호한다. 높은 언덕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왜냐하면 교리를 표현하는 대상물로서의 권위가 확보되고, 어디서든 잘 보이게 시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약현성당, 새남터와 당고개 성지와 가까운 언덕의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 한강변에 높게 자리한 절두산 성지가 대표적인 예다. 명동성당도 이런 이유로 높은 언덕에 터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