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8년 페스트가 이탈리아 피렌체를 덮쳤다. 3월부터 7월까지 넉 달 동안 무려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럽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페스트는 퍼져나갔고,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낳았다. 병이 잦아들 때까지 50년간 당시 유럽 인구 8,000만 명 중 3분의 1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대재앙이었다.
팬데믹이 시작되자 피렌체 시내는 순식간에 사람이 살기 힘든 생지옥으로 변했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민음사)에 따르면, “재난은 너무나 큰 공포를 남자들과 여자들의 가슴속에 심어 놓았고, 형제가 형제를 포기하고, 아저씨가 조카를, 누나가 동생을, 그리고 더 흔하게는 아내가 남편을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참담한 경우도 있었다. “부모가 아이들을 마치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듯 돌아보지도 않고 돌보기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풍속이 무너지고, 인륜이 파괴되며, 생존주의가 횡행하면서 최소한의 인간적 연민조차 증발했다. “사람들은 환자를 피하고 환자에게서 달아났으며, 그리하면 자기만은 살 수 있다는 잔인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병에 걸리면 버림받고, 돌보는 사람이 없어지는 형편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잔인한 흑사병’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하층민의 삶은 더 비참했다. “길거리에는 밤낮없이 수많은 시신이 나뒹굴었고 집 안에는 더 많았습니다.” 환자를 돌보지 않고 시체를 방치하면서 전염병은 더 빨리 퍼져 갔다.
당시 의학 수준에서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었기에 절망에 빠진 이들 중엔 ‘최후의 축제’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앞으로 얼마 못 살 것이라 여기”면서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옮겨 다니며 끝없이 흥청망청 마셔대고, 마음 내키는 대로 즐겼다.” 대부분 병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사회였던 만큼 신의 구원을 바라며 더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렸다. 십자가 아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신의 은총과 구원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