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은 어딘가 틀에 박힌 것 같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이지안(이지은 분)이 대표적이다. 지안은 몸이 아픈 할머니와 함께 살지만, 정작 지안이 할머니를 돌보는 모습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도 할머니는 마지막 화에서 세상을 떠나며 지안이 과거와 이별하고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게 돕는 서사적 장치에 머무를 뿐이다.
현실 속 ‘영 케어러(Young Carer)’의 모습은 이와 많이 다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낫지도, 그렇다고 쉽게 죽지도 않는다. 자연히 돌봄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돌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빚은 불어나고, 인간관계는 단절되며, 영 케어러의 미래마저 어두워진다. 아픈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죄로 징역 4년이 확정된 강도영(가명) 씨의 사례는 한 가족의 삶이 무너지면 다른 가족의 삶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조기현의 《새파란 돌봄》은 그간 효심 깊은 자식의 희생, 혹은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만 소비되었던 청년의 돌봄을 언어화하려는 시도다. 스무 살, 치매 진단을 받은 아빠의 아빠가 되어 현재까지 돌봄을 계속해오면서도 꾸준히 자신과 주변의 삶을 글로, 영화로 풀어내 온 지은이는 이야기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맥락을 부여하는 순간 고통은 견딜만한 것으로 바뀌며, 나아가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3년 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퍼내기도 했던 지은이는, 이번엔 영 케어러 일곱 명을 인터뷰했다. 사적 영역에 갇혀있던 돌봄을 사회라는 광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다.
조기현이 인터뷰한 영 케어러 일곱 명은 나이도, 성별도, 사회경제적 지위도 다 다르다. 디자이너로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던 성희는 타지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3년간 연락도 주고받지 않던 아빠의 돌봄을 얼떨결에 떠맡았다.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푸른은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며 자연스레 돌봄자가 됐다. 초등학생이던 희준은 잘나가는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던 엄마가 갑자기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으며 어른인 엄마와 역할을 바꿨다. 아름은 아버지의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이자 조현병이 있는 엄마의 돌봄자였다. 형수는 알코올 의존에 빠진 동생을 돌보는 동시에 동생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경훈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돌봄을 자원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서진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며 12년간 아버지를 돌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