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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 세계대전,

제국주의의 탐욕이 불씨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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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렀다.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닌 ‘세계의 전쟁’이란 어떤 의미일까? 몇몇 국가가 편을 먹고 상대와 싸우는 일이 왜 일어난 걸까? 전쟁의 원인은 세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만큼 중요한 것이었을까? 인류가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른 1·2차 세계대전은 모두 탐욕스러운 제국주의가 전쟁의 중요한 불씨였다.

1차 세계대전, 영국과 독일의 충돌이 불러온 유럽의 긴장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 유럽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 중심에는 당대 최고의 제국 영국과 신흥 제국 독일의 대립이 있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급속도로 산업화를 이룬 독일은 세계 시장을 점유해 나갔다. 슬금슬금 힘을 키우는 독일이 영국에겐 눈엣가시였다.

독일은 식민지를 넓혀 부유한 제국이 되길 꿈꿨지만 선두주자인 영국·프랑스가 전 세계 곳곳을 차지하고 있어 식민지 확대가 어려웠다. 독일은 본격적으로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기 시작했다. 1914년 독일의 방위비는 1905년에 비해 무려 142%나 올랐다. 그러자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들도 군비 확장에 나섰다. 영국의 1914년도 해군 예산은 1899~1900년에 비해 74% 증가했을 정도다. 군비 확장 경쟁으로 유럽에 전운이 감돌자,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제국들은 서로 동맹을 맺었다. 1882년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가 삼국동맹을 맺었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1907년 영국·프랑스·러시아도 삼국협정을 맺었다.

1914년,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유럽 전체는 삽시간에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왜 이 사건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 걸까?

이는 앞서 봤던 제국들의 경쟁과 관련이 있다. 독일은 아프리카와 태평양 군도 등 기존 제국이 점령하지 못한 땅을 손에 넣으려 해군력을 증강했는데, 영국이 1904년 이후 군함을 생산하며 독일을 견제하고 위협했다. 전통적인 해군 강국인 영국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독일은 1910년대 무렵 유럽의 남동부 발칸 반도로 관심을 돌렸다.

이곳은 원래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왔는데, 19세기 들어 오스만 제국이 쇠락하며 서구 열강이 눈독을 들인 땅이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일부 지역을 할양받아 통치하고 있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호시탐탐 이 지역을 노렸다. 그런데 마침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발칸 반도의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고 만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했고, 각 동맹들이 전선을 형성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전쟁은 전 세계에 파괴적인 상처를 남겼다.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중동, 중국의 산둥반도와 남태평양의 섬들까지 전쟁터로 변해 쑥대밭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이는 민간인 사망자를 제외하고도 1,000만 명에 육박한다.

기간 : 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
참전 진영
① 연합국 : 영국·프랑스·러시아·미국 등 19개국
② 독일 동맹국 :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제국·불가리아 등 4개국

 

제2차 세계대전, 제국의 해체? 눈 가리고 아웅, 승전국들 오히려 식민지 늘어

2차 세계대전의 배경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공황, 사회주의 혁명 등 여러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된 제국주의 야심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한다.

1차 세계대전 종전 뒤, 전후 수습을 위해 ‘파리 강화회담’이 열렸다(1919~1920년). 승전국 영국·프랑스·미국과 패전국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제국 등 30여 개국이 참석했다. 전쟁에서 이긴 연합국은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제국 해체에 열을 올렸다. 명목은 단순했다. 어떤 제국이 전쟁을 또 벌이면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지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 하지만 속셈은 달랐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패전국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은 더 강한 제국이 되려고 했다.

회담 결과 독일은 아프리카의 카메룬, 독일령 서남아프리카(나미비아), 독일령 남태평양 군도 등 해외 식민지 전부를 잃었다. 뿐만 아니라 1870~1871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얻어낸 알자스-로렌 지방을 비롯한 독일 본토 일부도 상실했다. 독일은 제국 시절 영토의 13%(대략 4만 3,000㎢)와 인구의 10분의 1(약 650만 명)을 잃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으로 쪼개졌다. 이들 국가의 독립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권[1]이 내세워졌다. 그러나 이 민족자결권은 아이러니하게도 승전 제국의 식민지 국가들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회담 이후 승전국들은 오히려 교묘한 방식으로 식민지를 더 늘렸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후 몰락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인 이라크·팔레스타인·시리아·레바논 지역을 나눠 가졌다.

기간 : 1939년 9월 1일~1945년 9월 2일
참전 진영  ① 연합국 : 영국·프랑스·러시아·미국 등 27개국  ② 추축국 :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10개국
앙심을 품은 독일·이탈리아·일본

승전국의 위선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예고했다. 패전한 독일은 분노에 휩싸였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잃어버린 식민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한편 패전국뿐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편에 가담해 승리한 이탈리아와 일본도 회담 결과에 불만을 품었다. 이탈리아는 본래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속한 동유럽 일대를 식민지로 주겠다고 약속해 연합국을 편들어주었다. 그런데 파리 강화회담 결과 동유럽 일대는 독립 국가가 됐다. 이탈리아는 이에 앙심을 품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 참전 대가로 중국의 산둥반도와 독일이 상실한 남태평양 군도의 일부 지역을 받았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 가진 영토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유일한 아시아 제국으로서, 당시 출범한 국제연맹(국제연합UN의 전신) 규약에 ‘인종 평등’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지만 서구 제국의 반대로 무산된다. 이후 일본은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시아를 침략하며 제국을 넓혀 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승전한 강대 제국에 밀린 독일·이탈리아·일본은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 지구적 전쟁을 다시 일으키게 된다. 이 전쟁으로 5,600만 명 이상이 죽었고 2,0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겪은, 최악의 대재앙이었다.


🖲 월간 <유레카> 453호 특집 : 지금 제국주의를, 왜?
 
01 지금, 제국의를 왜? 키워드리포트
02 제국주의를 떠받치는 두 기둥, 산업혁명과 과학발전
03 제국주의, 전 세계 대륙에 깃발을 꽂다
04 제1,2차 세계대전: 제국주의 탐욕이 불씨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