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정책, 혹은 쇄국주의라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우리나라의 경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당시 쇄국정책을 썼어. 흥선대원군은 1864년 어린 고종을 대신해서 국정을 이끌었는데, 쇄국정책은 나라의 문을 닫고 서양과 통상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이야.
1853년, 일본 항구에 커다란 배들이 나타났어.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였지. 이들의 손에는 일본과의 통상·개국을 요청하는 문서가 들려 있었어. 1840년 청나라가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에 힘없이 패배한 모습을 지켜본 일본은 선뜻 항구를 개항했어.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던 조선과 다르게.
일본은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1854년, 1858년) 미국과 ‘미일화친조약’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었어. 이에 따라 일본은 5개 항구를 개항하고 미국과 교역을 시작했어.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무역에 일체 간섭할 수 없었고, 미국의 치외법권을 인정했으며, 관세도 미국에게 유리하게 체결됐어. 불평등 조약이긴 했지만 일본은 미국과 교류하면서 프랑스·독일 등 서양 제국들과 잇따라 교역을 했고, 그 결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의 길로 나아갔어.
일본의 지도층은 서양 제국들과 교류하면서 열강의 힘을 실감했어. 이들의 식민지가 안 되려면 제국의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지. 1868년, 일본은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새롭게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개혁 ‘메이지 유신’을 단행해.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권세가인 막부들이 지역을 나눠 다스렸는데, 이 개혁을 통해 독일이 작은 왕국을 통일했듯 천황을 세우고 권력을 중앙으로 모은 거지.
이렇게 세운 메이지 정부는 서구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 1871년 대규모 문화사절단을 유럽에 파견했고, 신분제 폐지, 전국 화폐 단위 통일, 시민의 거주 이전 및 직업의 자유 보장, 징병제 실시, 산업화 정책 등 근대화 정책을 추진해나갔어. 일본은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를 다졌고, 서구 열강처럼 안정적인 상품 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필요로 하게 됐어. 일본은 주위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아 강대한 제국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