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일 기르며 난 참 많이 변했다. 그중 하나가 다른 집 마당의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낮은 빌라가 빼곡한 서울의 우리 동네엔 단독주택도 종종 있다. 그리고 그 집 마당엔 거의 항상, 개가 있다. 예전엔 ‘아, 마당에 개를 기르는군.’ ‘마당에 사니 넓고 얼마나 좋아, 운이 좋은 개군.’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천둥이를 기르면서 마당에 사는 개들의 삶을 여러 각도로 보게 된다.
앞집은 단독주택이다. 2층 우리집 부엌에서 요리하다 보면 창문으로 앞집 마당이 들여다보인다. 거기에 가을 갈대처럼 풍성한 갈색 꼬리를 가진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개 이름은 모른다. 없진 않겠지만, 주인이 불러주는 걸 별로 들은 적이 없다.
자동차 한 대 겨우 세울 정도 넓이의 마당에 울타리를 세워 반으로 갈랐는데, 개는 그 안쪽 공간에 있는 나무집에 사슬로 묶여 있다. 지름 2m 정도가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전부다. 마당에서만이라도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르지 못한다. 낯선 이가 현관에 오면 경계하며 월월월 짖는 모습을 보아, 풀어두면 현관까지 뛰어나가 외부인을 위협할 거라고 여겼을 것 같다. 사람들은 그를 ‘사나운 개’라고 여길 테고, 동네 시끄럽다고 욕할 것이다.
개의 특성을 좀 더 깊이 알게 된 후, 난 그 개를 그렇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묻게 됐다. 진돗개는 영역 주장이 꽤나 확실한 종이라 저렇게 마당에 계속 두면 마당을 지켜야 할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특성을 무시한 채(아니,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둔 것일까) 저렇게 방치하면 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새벽배송’이 이루어지는 꼭두새벽에도 짖어대는 민폐견이 되어버린다. 이미 그 개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