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는 현대 페미니즘 SF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녀는 SF적 상상력을 통해 인종과 젠더의 문제를 다시 사고하려 애쓴다.
널리 퍼진 상식과는 달리, SF소설은 과학소설만은 아니다. 물론, 과학은 이 장르에서 예나 지금이나 핵심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과학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재와는 다른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경이감’을 불러일으키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상상력’이다. 예전에는 SF를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약어로 보았으나, 요즘엔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 또는 과학 판타지(Scientific Fantasy)의 약어로 보기도 한다. 사변적 또는 과학적 추론에 바탕을 두고, ‘그럴듯한’ 사실적 또는 환상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설이라는 뜻이다.
‘그럴듯한 다른 세계’의 구축 방향은 흔히 미래를 향하나, 스팀펑크 같은 대체 역사나 시간여행처럼 과거를 향할 수도 있고, 평행 세계나 현실 게임물처럼 환상을 끼워 넣어 현재를 변형할 수도 있다. 이처럼 SF 소설에서는 현재의 시공간이 정지되고, 전혀 다른 현실에서 사건들이 전개된다. 작가들은 낯선 시공간에서 현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며 더 나은 대안을 떠올릴 가능성을 창조한다. 따라서 SF소설의 경이란, 우발적·기적적 사건이 일으키는 황당한 경이라기보다는 현재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인지적 충격이다.
최초의 흑인 여성 SF 작가로서 버틀러는 SF의 ‘낯설게 하기’ 효과를 이용해 인종과 젠더 문제를 새롭게 통찰하고, 백인 중산층 남성이라는 서구 세계의 표준 인간형을 해체함으로써 이중으로 억압받는 유색인 여성을 해방하려 애썼다. 백인 남성 작가들의 마초적 판타지를 보여주는 ‘우주 서부극’에 가까웠던 SF 문학은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 작가의 노력에 따라 그 내부에서부터 철저히 해체돼 여성 문학으로 다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