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기가 어려운데, 특히 존경하는 마음을 갖긴 더 어렵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우리의 문화적 우월감과 식민지 경험에 따르는 원한 같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심경을 뚫고 나오는 예외가 몇 있다. 이세이 미야케 같은 디자이너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 사람이고, 철저히 일본문화를 지향해 왔다. 그럼에도 엄청난 성취를 이뤘기에 선망하게 된다. 이세이 미야케와 더불어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그래픽 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 같은 사람들도 그 예외에 속한다. 이런 디자이너들의 작품 앞에서는 일본이라는 글자가 희미해지고, 그들 각각을 한 사람의 뛰어난 디자이너로서 존경 어린 눈으로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이 디자이너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중·장년층으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얻은 ‘바오바오백’의 디자이너로 언급될 뿐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이세이 미야케의 명성과 영향력은 우리의 예상을 훌쩍 넘어선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디자인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크게 영향받은 디자이너이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항상 이세이 미야케가 디자인한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살았다. 그 외에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그를 존경했고 그의 패션 디자인에 열광했다.
이세이 미야케가 세계 패션에 남긴 업적은 단순한 명품 브랜드의 수준을 넘어선다. 가장 대표적인 그의 유산은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이다. 이세이 미야케가 오랜 세월 동안 실험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성공한 섬유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