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4
예술, 문학
목록

문학 읽기

《남자의 자리》

사라진 기억, 잊어버린 언어를 되찾는 과정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의 임종 이후 열다섯 해가 지나서야
그가 떠나간 자리를 응시한다.
그동안 잊었던 그의 존재를, 아버지의 언어로써 이야기한다.
image

자신의 이야기로 공적 진실을 드러내는

2022년 노벨 문학상은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개인 기억의 뿌리, 소외, 집단적 속박을 폭로한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수상 이유로 내놓았다. 에르노는 작품에서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독특한 글쓰기 양식을 통해 “젠더, 언어, 계급에 나타나는 강력한 불균형”을 탐구해 왔다. 아버지의 실제 일생을 다룬 《남자의 자리》는 에르노 문학의 이런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오토픽션이란, ‘자서전’을 뜻하는 오토(Auto-)와 ‘허구’를 뜻하는 픽션(Ficiton)을 결합한 장르이다. 에르노는 말한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른 작가들이 주로 상상력을 동원해 인물과 사건을 꾸며내려 애쓰는 데 반해 에르노는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만 이야기로 써낸다. 이 때문에 언뜻 보면 그녀의 작품은 전통적 소설보다는 차라리 회고나 일기나 고백에 가깝다.

차이가 있다면, 자신을 마치 타자처럼 냉정하게 다룬다는 점에 있다. 수상 이유에 들어 있는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은 이를 뜻한다. 에르노는 공적 진실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조차 숨기지 않고 그려낸다. 예를 들면, 《사건》에서는 자신의 임신 중지(낙태) 체험을, 《단순한 열정》에서는 러시아 유부남 외교관과의 불륜 경험을, 《부끄러움》에서는 부부싸움 하던 아버지가 낫을 들고 어머니를 죽이려 한 기억을 남김없이 폭로한다. 각각은 페미니즘 운동, 소비에트 몰락, 가정 폭력 문제와 연결돼 젠더와 계급, 윤리와 언어의 문제를 깊이 성찰하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라고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듯, 에르노는 자기 이야기에 동시대 여성의 삶 전체를 겹쳐 쓴다. 에르노의 고백적 글쓰기는 사소한 개인 체험인 자기 위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여성 체험을 드러낸다. 사실, 이럴 때만 고백은, 기록은, 회고는 문학이 된다. 그 안에 동시대 인간이 추구한 중대한 가치, 시대 경험과 감각, 더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망을 품어야 한다. 에르노는 이야기한다.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내 육체와 감각과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자리’를 얻고자 하는 아버지 세대 노동 계급의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