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시절이다.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2022년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 대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함으로써 장기집권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평택 빵 공장에서, 이태원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정치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남 탓과 변명만 일삼는다. 오늘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성별과 세대, 계급에 따라 격렬한 전쟁이 벌어진다. 어쩐지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인류학자 샹뱌오는 이 혼돈과 환멸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색다른 해결책을 제안한다. 바로 ‘자기 자신을 방법으로 삼기’다. 요즘 유행하는 ‘마음 챙김’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하여 주변에 대한 도경[1]을 그리고,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샹뱌오의 책 《주변의 상실》은 자신을 방법으로 삼아 공부하고, 고민하고, 소통해온 한 인류학자의 여정이 담겨 있다. 샹뱌오가 나고 자란 원저우, 대학 시절을 보낸 베이징, 현재 교편을 잡고 있는 옥스퍼드에서 나눈 방담[2]과 여러 인터뷰, 기고를 모았다.
샹뱌오는 중국이 자유화와 경제개발에 나선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중국 중앙 텔레비전 CCTV의 다큐멘터리 <하상(河殤)>은 황하(黃河)와 대양(大洋)의 대비를 통해 중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많은 지식인이 누런 황하가 상징하는 중국의 낡은 전통을 벗어던지고 푸른 바다가 상징하는 서양의 자유와 과학,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중국을 ‘서구화’하려던 이들의 노력은 1989년 천안문 사태[3]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중국의 개혁 개방 드라이브는 그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중국이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샹뱌오는 개혁 개방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 회의적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던 시기는 G2(Group of 2, 미국과 중국)의 자리에 오른 지금이 아닌 1950~60년대다. 인도와 ‘평화 5원칙[4]’에 합의하고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개최하는 등 미국과 소련에 맞서는 ‘제3세계’의 리더로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비(非)서구의 단결과 평화, 번영을 추구한다는 공동의 이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수민족 자치구에 대한 태도도 달랐다. 티베트와 위구르에 파견된 한족 관리들은 가장 먼저 현지의 언어를 배웠다. 자신들의 이상을 억지로 주입하려 들지 않고, 현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득하고 토론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