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기억이 지워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날이 새로울 수 있겠지만, 반대로 축적되는 것이 없다. 어제 만난 친구와의 일이나 읽었던 책, 봤던 영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을 들여서 완성하는 모든 일이 불가능해진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한눈에 반하는 사랑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한눈에 반하더라도, 그다음부턴 차차 쌓아가는 추억이 중요하다. 매일 아침 모든 것이 리셋된다면 사랑도, 우정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일본의 ‘전격소설대상 미디어워크스 문고상’을 수상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출간 3개월 만에 판매량이 10만 부를 넘었고, 지금까지 약 4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일본에서 2022년 7월 29일 개봉한 영화는 한 달 만에 관객 100만을 돌파했고, 12억 6,000만 엔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실로 큰 성공을 거둔 인기작이다.
고교생 ‘토루’는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도우려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괴롭히던 아이들이 모르는 동급생에게 사랑 고백을 하라고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토루는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다른 반의 ‘마오리’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데, 그녀는 바로 수락한다. 대신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고, 연락은 간단하게 하고, 정말로 좋아하지는 말라는 것.
마오리가 이상한 조건을 내건 이유는 기억상실증 때문이다. 1년 전 당한 사고의 후유증으로 매일 아침 어제의 기억이 사라진다. 낮에도 잠을 자면 이전의 기억이 지워진다. 학교에서는 이 사실을 선생들과 절친 이즈미만이 알고 있다. 혹시 나쁜 일이 생길 수 있기에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이다. 매일 기억이 리셋되는 마오리는 이즈미하고만 어울리며 답답한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토루가 나타났다. 토루의 고백을 받았을 때, 마오리는 갑갑한 상황에서 한 발 나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