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Public Relation, 선전)의 역사에 꼭 등장하는 세 사람이 있다. P.T.바넘, 에드워드 버네이스, 그리고 요제프 괴벨스. 각자 나름대로 선전을 한 그들의 방법은 당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연구 대상이자 고전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속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서커스 업자였다가 정치가가 된 P.T.바넘(1810~1891)의 말이다. 그는 사람들을 기막히게 잘 속였다. 80세의 평범한 여성을 161세라며 뻥치고 서커스 무대에 세웠는데 그녀를 보려고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또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열차에 치어 죽자 박제한 후 새끼 코끼리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꾸며내서 대성공을 거뒀다. 바넘은 자신의 전시회장에 ‘Egress(출구)’라는 간판을 달았는데, 같은 뜻의 ‘Exit’에 비해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다. 이 간판이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출구로 나온 사람들은 전시장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표를 한 번 더 끊어야 했다.
바넘의 마케팅은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무(無)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넘은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의 원조라고 평가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의 선전술은 각국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대중의 생각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미국의 광고전문가 에드워드 버네이스(1891~1995)가 한 말이다. 머리망 회사 베니다의 선전 의뢰를 받은 버네이스는 노동자의 머리가 길면 자칫 기계에 낄 수 있다는 경고 캠페인을 전개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베니다의 머리망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대유행이 되었다. 아이보리 비누 회사도 버네이스에게 선전을 의뢰했다. 그는 아이보리 비누를 재료 삼은 비누 조각 경연대회를 열었다. 비누를 싫어하던 아이들이 비누를 갖고 놀자 엄마들도 열광했다. 비누 조각 경연대회는 25년이나 지속되었고, 미국 전역을 휩쓸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