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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완전정복⑦

왜 나폴레옹은 직접 왕관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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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실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사형에 처했어. 동료 의원들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의 로베스피에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지. 의원들은 로베스피에르를 끌어냈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막을 내려. 이후 프랑스에는 ‘총재정부’라는 새로운 정부가 생겨났어. 새 정부는 왕당파의 반란을 진압하고, 서민계급의 불만도 잠재워야 했어. 그리고 프랑스는 혁명의 불길을 막으려는 이웃 국가들과 전쟁도 치르고 있었지. 그래서 총재들은 이 혼란한 사태를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했어.

국민 영웅 나폴레옹, 프랑스로 돌아오다

1793년,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툴롱은 전운이 감돌고 있었어. 공화제가 도입되며 왕이 사라진 것에 반발한 왕당파가 해군 기지가 있는 툴롱에 자리를 잡고 반란을 일으켰거든. 왕당파는 공화파와 싸우기 위해 영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외세를 끌어들였지. 이때 왕당파에 맞서 반란을 진압한 장군이 바로 나폴레옹이었어. 24세의 젊은 군인 나폴레옹은 이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준장으로 진급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 이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국민 영웅’이 되었지.

국민 영웅 나폴레옹의 다음 목표는 이집트였어. 나폴레옹이 갑자기 먼 곳에 있는 이집트로 향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프랑스와 영국은 1757년 인도의 지배권을 두고 다퉜어. 이 싸움에서 영국이 이겼고, 영국은 그 후 인도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어. 이집트는 영국과 인도의 교류를 돕는 중간지점 역할을 했는데, 나폴레옹은 프랑스가 이집트를 점령하면 영국의 인도 진출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집트 원정은 쉽지 않았어. 프랑스군은 지상전에서 승리해 순식간에 수도 카이로를 점령했지만, 해상전에서 영국군에 지고 말았어. 해상전 패배로 지원군과 물자가 오갈 수 없게 되자 나폴레옹은 원정이 실패했다는 판단을 내렸어. 게다가 본토 전투에서도 프랑스가 연일 패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

나폴레옹은 일단 이집트 원정을 포기하고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했어. 그다음 혼란스러운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잡을 생각이었지. 나폴레옹은 이집트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지휘권을 다른 장군에게 넘기고 파리로 돌아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