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은 회사에 속한 직장 가입자,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와 같은 지역 가입자로 나눠 보험료를 부과한다. 직장 가입자의 수입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가족은 ‘피부양자’로 보고 보험료를 안 내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서 법적인 부부가 아닌 사실혼[1]의 경우,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한다.
결혼 5년차 동성 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는 2020년 공단으로부터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았다. 이들 두 사람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취득 소식을 알렸는데, 인터뷰 후 두 시간여 만에 소 씨의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당했다. 공단은 ‘행정 처리상의 실수’였다며 소 씨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했고, 그가 피부양자로 인정받았던 기간 동안 내지 않았던 보험료도 부과했다.
이에 소 씨는 2021년 2월, "동성인 배우자도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해달라"며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에서는 우리 법이 말하는 사실혼은 남녀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하고 있으며 이성과 동성의 결합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23년 2월 21일,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이 1심의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공단이 자체적으로 이성 부부의 사실혼을 인정해오고 있는데 “(이성 부부의) 사실혼과 동성 부부의 사례가 국민건강보험법의 관점에서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달라”고 공단 측에 요구했다. 공단은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배우자는 다르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이 두 경우의 차별 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2심 재판부는,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데, 이성 결합 부부는 인정하고 동성 결합 부부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한 차별 대우에 해당한다며 1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공단이 자체적으로 사실혼을 인정해왔다면, 법률상 평등의 원칙에 따라 동성부부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단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남은 상황이다.
아니다. 이번 판결로 건강보험에서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와 같은 피부양자 자격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맞지만, 법적인 부부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법적 부부가 되려면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헌법과 민법 등 관련 법은 혼인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는 접수되지 못하며, 법적 부부가 될 수 없다.
또한 법원에서는 이성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는 사실혼을 인정한다. 이번 2심 재판부는 헌법과 기존 판례를 근거로 “동성 결합은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며 동성 간의 사실혼 역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 결합 상대방’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관계가 실질적으로는 사실혼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인정했다. 두 사람이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동거하며 경제적·정서적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므로 동성 배우자 역시 국민건강보험법상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닌 만큼 다른 사회보장 제도에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특히 이번 판결은 국민건강보험법의 특수성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건강보험제도의 경우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법원의 해석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건강보험 외에 다른 사회보장 법령(국민연금법, 사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은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자로 피부양자를 명시하고 있어서 동성 커플이 보호받기는 어렵다.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사실혼을 인정한다는 표현이 없고, 공단에서 자체적으로 사실혼 관계의 이성 부부의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해오고 있었다.
법원은 이 부분에 주목했다. 사실혼 관계의 이성 부부 역시 공단이 법적 근거 없이 자율적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주고 있는데, 동성이라고 해서 그 자격을 얻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 재판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공단은 이번 판결에 불복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만약 3심에서도 2심과 같은 결과가 나오면 앞으로 건강보험에 한해서는 동성 배우자도 피부양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동성 간의 결혼이 인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회보장 제도들에 같은 기준이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성소수자, 더 나아가 소수자의 평등에 한 발 더 다가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심 재판부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게 이어져 온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국제 사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밝히며,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며 소수자 보호를 위한 법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번 판결 이후 소 씨는 “앞으로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사랑이 이길 것”이라며 “사법부의 판단으로 한국 사회의 수많은 성소수자가 어떤 불평등에 놓여 있었는지 세상에 알려지는 것 같아서 기쁘다. 정부도 그간의 과오를 반성하고 평등을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를 맡은 박한희 변호사는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를 법원이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도 풀이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역시 “우리 사회가 이번 판결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어야 함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며 “성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 없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하게 모든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