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두칼레 궁 앞에서 만세를 하는 단발머리 인형 같은 이 물체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수수한 얼굴에 어설픈 손 모양을 한 모습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만세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당혹스러운 건 이게 인형이 아니라 와인 오프너라는 점.
1993년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여자친구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이 와인 오프너를 디자인했다. 와인 오프너를 여성의 형상으로 디자인한 것은 독창적이긴 했지만 자칫하면 캐릭터 상품처럼 보이기 쉬운 접근이다. 그런데 멘디니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이 별것 아닌 도구에 ‘안나 G(Anna G)’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결과 이 와인 오프너는 단지 무생물인 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시도였는지 모를 멘디니의 이 작품은 세상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안나G는 1년에 1,000만 개가 판매되었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초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의 주방용품회사 알레시(Alessi)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나 G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자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곧바로 자신의 모습을 적용한 와인 오프너 ‘알레산드로 M’을 디자인하여 한 쌍의 커플 와인 오프너를 만들었다. 알레산드로 M으로는 와인 마개가 잘 따지지도 않았지만, 알레산드로 M이 더해지면서 멘디니의 와인 오프너는 더 이상 와인 오프너가 아닌 어떤 것이 되었다. 와인 오프너가 단순히 주방이나 거실에 자리 잡고서 와인 병을 따는 도구가 아닌, 문화적인 존재로 그 존재 방식이 바뀌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