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 바다야. 모두 아는 것처럼 3월의 첫날인 3월 1일은 ‘삼일절’이야. 일본에게서 독립을 하려던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인 날이지. 요즘 아이들은 3.1운동을 ‘삼점일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면서 역사에 무지한 현실을 지적하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 아빠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는데, 뉴스로까지 나온 걸 보면 아주 거짓은 아닌가봐.
하긴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로 시작되는 삼일절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게 예전에는 어렵지 않았는데, 아빠도 요즘엔 뒷마무리를 머뭇거리게 되는 걸 보니, 뭐든 꾸준하지 않으면 잊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어. 그래, 아이들 탓이 아니라 그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 크지.
자, 타임머신을 타고 1919년 3월 1일 정오의 파고다공원으로 가볼까? 참고로 파고다공원이란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지금 탑골공원의 옛 이름이야. 상상해봐, 어땠을 것 같아? 사람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구름처럼 모여 있고, 단상 위 의자에 민족대표 33인이 앉아 곧 시작될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아니야. 이날 파고다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은 정재용 선생의 일대기를 정리해서 기록한 《수양산인 정재용 전기》에 의하면, 11시 30분경 공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팔각정 정자 위에는 역시 아무런 좌석 준비도 없었고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인산(因山)[1]을 참배하러 올라온 듯한 시골노인 10여 명만 보일 뿐이었다”고 해. 그리고 “오후 1시30분경 공원 북문으로 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석탑을 중심으로 4,000여 명이 모여섰다. 학생이 주류를 이룬 인파 속에 시간과 장소는 정적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어. 만세운동은 정오가 아니라 오후 두 시로 계획되어 있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