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건국 초기 당나라에서 탈출한 대조영이 지휘하던 무리였던 만큼 힘이 세지 못했다. 신라 학자 최치원에 따르면, 건국 초기 동모산 인근에 자리한 발해의 영토는 “사마귀만 한 땅”이었다. 그러나 대조영과 뒤를 이은 왕들이 영토 확장을 거듭해, 3대 문왕737~793년 시기 발해는 옛 고구려 땅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게 된다.
단기간에 영토를 크게 넓혔으니, 광대한 지역을 다스리기 위한 제도가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다면 발해는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발해 왕들은 재빠르게 통치 체계를 정비, 나라 기틀을 다져 발해가 더 큰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 과정을 따라가 보자.
발해는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까지 닿는 드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행정 체계를 마련했다. 그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이 5경-15부-62주 체계다. 먼저 5경京은 다섯 수도라는 의미로, 발해는 중심 수도인 상경 용천부[1]를 비롯해 지방 행정의 최고 중심지마다 수도 역할을 하는 5경을 두었다. 그리고 5경 안의 주요 길목과 군사적 요지에 15부와 62주를 두고, 주 아래에는 현을 설치했다.
주와 현에는 지방관을 파견해 주민을 다스렸는데, 말갈인들이 살아가는 촌락의 경우 말갈 부족장이 고구려인 지방관을 보좌하게 하여 효율적으로 지배하였다. 이처럼 5경-15부-62주 체계로 발해 왕실은 광대한 영토 안의 지방민과 말갈 촌락을 속속들이 통치할 수 있었다.
건국 초기에는 중앙의 통치 체제 역시 고구려의 제도를 그대로 썼지만, 이후 당나라의 3성 6부제[2]를 받아들여 새롭게 정비했다. 당나라처럼 입법과 행정을 담당한 3성을 두었고, 3성 가운데 정책을 실행하는 정당성 아래 6부를 두어 국정을 운영했다. 이때 각 부서의 명칭과 운영 방식은 당의 것을 따르지 않고 발해의 형편에 맞게 재편해서 다스렸다. (아래 그림 발해의 3성 6부제. 괄호 안의 명칭이 당나라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