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
한국사
목록
오늘의 문해력 미션
먼저 글을 읽으면 읽기 완료로 바뀝니다.
📖 글 읽기 읽는 중
📚 문제 풀기 대기
✍️ 글쓰기 대기
🪄 AI 첨삭 글 제출 후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부르는 이유

image

7세기 후반에 세워진 발해는 9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당나라는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렀다.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라는 뜻이다. 발해가 이 시기에 얼마나 크게 발전했는지, 발해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발해의 무엇이 해동성국이라는 찬사를 듣게 했는지 궁금하다. 

드넓은 영토, 갖가지 특산물로 무역 강국이 되다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드넓은 영토와 관련이 깊다. 영토가 넓으니 자연히 자연환경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갖가지 특산물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발해는 특산물 무역을 통해서 한층 더 번영할 수 있었다.

먼저 발해의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지 알아보자. 전성기 시절 발해는 오늘날의 남북한 영토의 약 4배에 가까울 만큼 드넓었다. 이 시기 발해의 국경은 남쪽으로는 현재 북한의 대동강 근처, 북쪽으로는 중국의 헤이룽강과 쑹화강이 만나는 지점, 동쪽으로는 러시아 연해주, 서쪽으로는 요동까지 닿았다. 한국 역사의 왕조 가운데 제일 넓은 땅을 다스렸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의 발해다.

영토가 넓다보니 자연환경이 다채로웠다. 태백산맥을 비롯한 산간 지대와 바닷가, 드넓은 초원 등을 모두 아울렀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갖가지 특산물이 생산됐다. 산간 지대에서는 담비·호랑이·토끼 등 동물 가죽과 인삼·사향·꿀 등 다양한 약재를 얻을 수 있었다. 초원에서는 멋진 말들이 자랐고 바다에서는 질 좋은 미역이 났다. 자연적인 특산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구려로부터 제철·공예 기술을 물려받은 발해는 질 좋은 철과 자기로도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