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고종의 아버지)은 아들 고종을 왕위에 올린 뒤 권력을 손에 넣었다. 대원군은 나라의 문을 틀어막고 서양과 통상을 하지 않겠다는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펼쳤다. 대원군과 척지게 된 명성 황후는 고종을 움직여 대원군을 정계에서 내쫓는 데 성공한다.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도 더불어 힘을 잃고 조선은 드디어 외부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 항구를 열어(개항) 외국 선박의 출입을 허용하고 외국과 통상관계를 공식화한 것이다.
개항기, 조선에 서양의 근대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히는 전등이 켜지고 자동차가 달렸다. 1887년 3월, 경복궁 내 건청궁에 처음으로 100촉짜리 전구 두 개가 켜졌다. 이를 기점으로 경복궁 전체에 750개의 전등을 설치하는 대형 사업이 시작됐다. 경운궁과 창덕궁에도 전등이 달렸고, 얼마 후 궁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전등이 저잣거리에도 등장했다.
몇 해 후, 전등 못지않은 놀라운 신식 문물의 마술이 펼쳐졌다. 고종이 전화를 가설했다. 전화는 다른 신문물과 달랐다.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히는 전등도 신기하긴 했지만, 촛불 같은 다른 조명 기구가 있었으니 짐작이 됐다. 수레나 마차와 비슷한 모양새의 자동차도 놀랍기는 했지만 눈에 익은 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는 달랐다.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데 수화기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듣는 이들이 놀라 뒤로 나자빠지며 도망갈 정도였다. 멀리 있는 사람과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는 요술 같은 전화기…
조선 정부는 이 편리한 물건을 스스로 운영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녹록지[1] 않았다. 조선을 넘보던 일본 제국이 정보전달 수단인 통신 시설을 장악함으로써 우위를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 전화가 등장하면서 조선 사회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