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클래식 음악’ 하면 주로 독일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을 떠올린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하이든, 바흐, 드뷔시, 생상스 등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유명 작곡가들이 대부분 이 나라의 작곡가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페라 등 성악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탈리아, 특유의 짙은 애수와 웅장한 선율을 좋아한다면 러시아, 쇼팽과 그의 피아노 작품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면 폴란드 정도가 추가되곤 한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떨까.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과 함께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유럽 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심지어 퀸이나 오아시스, 비틀스, 콜드플레이 등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밴드들을 탄생시킨 영국이지만, 유독 클래식 음악에서만큼은 영국이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혹은 다른 나라의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등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는 이렇다 할 작곡가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긴 클래식 음악사에서 영국은 후기 낭만주의 시대[1]에 이르러서야 인정받는 작곡가가 등장한 나라다. 물론 바로크 시대[2] 헨델이 영국에서 활약했지만, 그는 독일 출신이었다. 헨리 퍼셀이란 위대한 작곡가가 있었지만, 그 역시 오늘날까지 중요하게 다뤄지는 작곡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고전 시대[3]를 대표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작곡가들은 모두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낭만주의 시대 각 국가에서 개성 있는 작곡가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할 때도 유독 영국에서만큼은 주목받는 작곡가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낭만주의가 후기로 넘어갈 즈음에서야 비로소 영국의 체면을 살려줄 작곡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에드워드 엘가다.
에드워드 엘가는 1857년 6월 2일, 영국 우스터 근교의 브로드히스에서 태어난 작곡가다. 악보상을 경영하는 교회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노 조율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의 어린 시절은 늘 음악과 함께였다. 실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 12세가 되던 해 자신의 첫 작품 ‘청년의 지휘봉(The Wand of Youth)’을 작곡하는 등 음악적 재능까지 보였던 엘가는 한때 아버지의 권유로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하는 등 음악과 거리가 먼 삶을 살기도 했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전업 음악인의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