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미’자를 모르는 사람도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있을 겁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예술계의 천재’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년)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그의 천재성은 만능에 가까워요. 회화, 조각 등 예술 창작은 기본인데다, 다 빈치는 과학자이며 발명가, 해부학자, 지리학자, 심지어 엔지니어로서도 많은 업적을 이뤘답니다. 인체비례도에서부터 함선에 싣기 적당한 크기의 연속사격이 가능한 다연발포 도안까지, 한 사람의 업적이라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죠.
레오나르도는 스무 살 무렵 1472년 피렌체에서 회화와 조각을 배웠는데 크게 성공을 못했고, 10년쯤 후에 밀라노로 떠납니다. 이곳에서 전쟁광 스포르차 공작이랑 엮이죠. 이때 전
쟁도구를 비롯해서 공학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창작한 것도 이때입니다. 스포르차 공작 가족 교회의 부속 수도원 벽면에 그린 벽화였어요.
이걸 그릴 때 벽면에 못을 박고, 이 못에 여러 개의 실을 연결해서 공간감을 살리기 위한 원근법을 썼다고 해요. 그는 당시 주로 쓰이던 프레스코[1] 기법은 물감이 너무 빨리 말라 템페라 기법으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템페라[2] 물감이 약해서 우수수 떨어지는 바람에 벽화 기초도 모른다고 비판을 받았다고 해요.

인체의 황금비율을 한눈에 알게 해준 이 작품은 그의 천재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는 고대 로마 건축에 큰 공헌을 한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가 쓴 《건축 10서》에서 영감을 얻었지요. 이 건축가는 건축물 배치가 인간 신체 비율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