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큰 그릇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SNS를 중심으로 1분 미만의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단 4개의 알파벳으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려 하는 등 짧은 시간 내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한 편에선 목표한 것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그렇게 점점 더 단단해져 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낭만주의 시대 체코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처럼.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드보르자크-야나체크로 이어지는 체코 민족주의 음악 계보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며 오늘날까지 체코 국민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슬라브 무곡집> <현을 위한 세레나데> <유머레스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명곡을 남긴 드보르자크지만, 사실 그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세상의 인정을 받은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작곡가다.
그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한참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한 것
인데, 음악인의 길을 끝까지 반대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다행히 드보르자크의 꿈을 알아준 외삼촌과 학교 선생님이 아버지를 끈질기게 설득한 덕분에 그는 늦은 나이에나마 음악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리스트 등 타고난 재능으로 음악계에 나타나자마자 세상의 주목을 받은 작곡가들도 많지만, 드보르자크는 ‘재능파’가 아닌 ‘노력파’에 가까웠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그는 친척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묵묵히 음악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