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추상적인 개념이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행복이나 사랑을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국어사전에서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경우를 ‘아름답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개 시각적인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리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으며, 공연처럼 시각적 측면과 소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아름다움’의 쾌감과 만족을 주는 경우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름다움, 즉 미(美)를 칼로스(Kalos)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선(善)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선을 의미하는 아가톤(Agathon)과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스(Kalos)를 합친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를 이상적으로 여겨 교육 이념으로 삼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칸트에까지 이어져, 칸트는 아름다움이란 선을 상징하며 아름다움과 도덕성 사이엔 완벽한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철학에서 다루는 미의 개념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이 토론에서 다루는 아름다움은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은 배제한다. 미인이나 아름다움 풍광,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운 음악 등 우리의 감각을 직접 자극하는 것을 대상으로 삼는다.
고대, 중세, 르네상스 시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아름다움이 주관적인 것인지 그 사물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지를 두고 여러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그러다 20세기에 오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상들 사이에 공통되거나 단일한 특징이 없으며 미적 경험이란 미적 태도에 달려 있으며 어떤 대상이라도 미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미적 대상이라고 하는 개념은 심리적 본질을 가진 개념이라고 보게 됐다.
아름다움은 시대나 문화, 성별, 지역, 특히 개인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거나 들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즐거움의 감정을 아름다움이라 보는 관점을 미적 주관주의라 부른다.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는 미적으로 중립적이고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조의 대표적인 철학자가 영국의 흄이다. 그는 ‘사물의 미는 그 사물을 관조하는 마음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홉스 역시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경험, 기억, 상상력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