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창작활동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돈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웠던 적은 별로 없었긴 해도 예술작품에 가격이 매겨져 거래된 것은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시장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미술작품의 경우를 보면, 과거 화가들은 거의 장인 신분이었고, 이들의 창작활동은 대개 귀족과 왕족을 비롯하여 그림을 주문해오면 작품을 그리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했다. 작품 자체의 가치를 따져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를 받아 생활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시대 그림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재질을 사용했느냐가 결정적이었다. 화가와 위탁자 사이에는 비싼 안료를 얼마나 사용할지, 액자를 어떤 수준에서 쓸지 등을 정했고, 그런 것들을 그림값에 포함했다고 한다. 그림은 오랫동안 시장에서 거래되어선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다는 르네상스적 전통에서 기인했다.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자의식이 높아졌고, 사회적 지위도 올라가 화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작품활동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창작자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림을 그려 생계를 이어갈 수 없더라도 이는 창작활동의 중요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부심이 생겨났다.
르네상스 이후 오랫동안 예술적 가치와 시장 가치를 극단적으로 이분화하는 경향이 짙었다. 예술작품은 가격을 매길 수 없으며 예술작품의 가치는 시장이 결정할 수 없고 전문가나 비평가들이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에 가격이 매겨져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상업이 발달하고, 시장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특히 비평가로부터 외면받아온 인상주의 화가들은 시장에서 평가되는 가치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미술품이 거래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상업적 시장에서 거래가 시작된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이후 19세기에 오면서 조세프 조엘 더빈이 런던과 뉴욕 등지에 갤러리를 열고 국제 미술품 거래를 시작해 20세기 오면서 세계적으로 갤러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13년 개장한 고금서화관이 최초의 근대적 갤러리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오면서 현대의 화가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가격이 매겨지고 판매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게 됐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돈으로 재단하는 풍조가 강해지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