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쉬운 멜로디, 따라 추고 싶은 중독성 있는 춤, 재미있는 뮤직비디오는 유튜브를 비롯한 SNS에서 빠르게 입소문 났다. 그 결과 <강남스타일>은 미국 빌보드 핫100[1] 차트에서 7주간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2014년에는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당시 유튜브 조회 수 표시 한계치였던 21억 4,748만 3,647건을 넘긴 탓에 유튜브에서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하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강남스타일> 이전에도 조짐이 있었다. 보아는 앨범 (2002년)로 한국인 최초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2009년 원더걸스의 영어버전 는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핫100 76위에 올랐다. 2011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파리에서 소속 가수의 합동 콘서트 ‘SM Town Live’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당시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공연 연장을 요구하는 플래시몹 시위가 벌어졌고, 이 소식이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의 사례들은 <강남스타일> 열풍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케이팝이 아시아에서는 분명 흥행하고 있었지만, 유럽·남미·북미 등지에서는 별로 주목받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강남스타일> 열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볼 만했다. 일각에서는 이 흥행이 ‘원 히트 원더[2]’의 성격이 강했다고 평가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이 초국적인 음악 장르로 발돋움하는 계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강남스타일> 이후 11년, 케이팝의 위상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