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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소녀>

그해 여름, 소녀를 키운 ‘다정함’

올해도 어김없이 설이 왔고, 또 설 연휴가 끝났다. 설 연휴가 끝나면 2월이 금세 가고 곧 3월이 온다. 사람들에게 시간은 차곡차곡 흐르지 않고, 각자의 기억에 따라 뭉턱뭉턱 사라진다. 어쨌거나 설 명절엔 대체로 가족들이 모인다. 덕담을 나누고 복을 기원한다. 이번 명절은 어땠는가? 지루했을 수도 있고 특별했을 수도 있고, 기뻤을 수도 있고 슬펐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명절이 되면 한 번쯤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가족은 무엇인가? 가족이라서 사랑하는 걸까, 사랑하니까 가족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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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37관왕 차지한 아일랜드 성장영화

아일랜드 영화 <말없는 소녀>는 한 소녀의 애틋한 성장기(成長記)다. 평범한 다정함이 소녀의 삶을 경이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다룬 ‘한여름 밤의 수채화’ 같은 작품.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해 영화제 37관왕에 올랐으며,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후보작에도 오른 수작이다.

경제난이 한창이던 1980년대 아일랜드. 가난한 시골농장의 아홉 살 소녀 코오트는 여섯째를 임신한 엄마와 경마, 술에 빠져 사는 아빠 사이에서 보살핌을 잘 못 받고 살고 있다. 혼자 숨어있기 좋아하고 학교에서도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는다. 여름방학이 되자 코오트는 동생을 낳기 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먼 친척집에 맡겨진다. 아빠는 딸이 입을 기본적인 옷가지조차 챙겨 오지 않았다.

소녀는 친척인 아일린 아줌마의 섬세한 다정함이 낯설다. 코오트가 차에서 내릴 때 아일린은 주저앉아 눈을 맞추며 아이를 환대한다.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머리를 빗겨주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씻겨준다. 소녀의 불편한 마음이 점점 녹아내린다. 한편 아일린의 남편 숀 아저씨는 무뚝뚝하다. 그러나 이 무뚝뚝함이 아일린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속 깊은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코오트는 곧 숀과 목장을 청소하고 손을 잡고 걷기도 한다. 코오트는 아저씨와 손을 잡고 걸으며 아빠와는 단 한 번도 손을 잡고 걸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