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정벌에 나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것은 1388년이다. 이 명백해 보이는 쿠데타는 고려 말기의 정치·사회적 혼란이 수습하기 어려울 만큼 극심한 탓에 벌어졌다. 그 주범은 고려의 권문세족이었다. 이들은 대토지를 보유하고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으며, 그 여파로 국가 재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부족한 재정을 농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했는데, 산출물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거둬들였다.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스스로 노비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정도였다. 기세등등한 권세로 부정과 부패도 일삼았다.
고려 말기는 민생 안정과 내정 개혁이 절실히 필요했다. 군사력을 손에 넣은 최영과 이성계를 중심으로 개혁적 성향의 신진 사대부들이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움직였지만, 출신과 상황에 따라, 혹은 어떤 수준의 개혁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달랐다.
위화도에서 회군해 개경으로 돌아온 이성계는 최영을 처형했다. 최영은 권문세족 출신인 데다 그의 딸은 우왕과 혼인한 왕비였으니, 부패한 고려사회를 개혁할 적임자가 아니었으며, 개혁의 의지 또한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신진 사대부들은 달랐다.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원했다. 이성계 일파가 최영을 처형하고, 우왕을 폐위시킨 것은 개혁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당장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왕위에 오른 게 1392년이니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당장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개혁도 필요했고, 민심도 살펴야 했으며, 개혁파 내부의 갈등도 해결해야 했다. 실제적인 권력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계획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