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글을 읽다가 멈칫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노약자와 장애인 앞에 놓여 있는 장벽을 없애는 무장애 디자인(배리어프리)에서 출발해, 보편성의 개념에 대한 재해석으로 확장해 나아갔다는 설명까지는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의 문장이 걸렸다. ‘다수의 집단에 속하지 못한 일부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어야 진정한 보편적 사회’이고, 이를 구현하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설명이었다.
어떤 자료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문장은 두 가지 점에서 불편했다. 첫째 ‘다수의 집단에 속하지 못한 일부를 끌어안는다’는 표현 속에는 ‘다수’는 배려와 관용을 베푸는 자들, ‘일부’는 끌어안겨야 하는 수동적 존재이다. 우리 사회와 개인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보는 매우 일반적인 시선이다. 언뜻 좋은 의미 같지만, 그들을 동등하게 보는 관점이 아니므로 어떤 의미에서 은밀한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 위의 설명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결코 다수와 일부를 경계짓지 않는다. 그 경계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철학이다. 무엇이 다수이고, 무엇이 일부인가. 이 둘을 경계짓는 것은 ‘평균’이라는 기준이다. 하지만 평균이라는 기준으로 개인을 판단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친구 중에는 키가 평균보다 큰 친구, 평균보다 작은 친구가 있다. 두 친구는 모두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불편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일례로 주방의 개수대와 조리대를 사용할 때 두 사람 모두 불편하다. 작은 친구는 주방에 발판을 놓고 사용했고, 키가 큰 친구는 몸을 구부정하게 굽히고 설거지를 하는데, 허리에 통증이 온다고 했다. 현재 싱크대 높이는 대략 80~85㎝다. 이 높이는 과거 ‘주방=여성의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에 따라 당시 여성의 평균 키(155~160㎝)에 맞춘 것이다. 성인 남성, 키 작은 어린이, 키 큰 여성, 키가 줄어든 노인 모두 싱크대와 조리대가 편하지 않다.